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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Palace/Book

이문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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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연히였다. 여름방학에 도서실에서 대학 입시전형을 알아보려다 굴러다니던 그 책을 발견한건.


초등학생때 이문열의 책들. 예컨데 대륙의 한 이라던가, 삼국지등을 읽으며 참으로 좋아했었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며 다재다능한 사람이라 생각했으며, 불멸을 읽으며 한발 뒤의 생각을 해보게 했고, 호모 엑세쿠탄스를 읽으며 신학과 형이상학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지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정치색과 무관하게 그는 훌륭한 글쟁이중 한명이다.

사실 이문열의 소설들중 '익명의 섬'등을 정신적인 성숙 이전에 읽어버렸고, 다시 읽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다시 곱씹는것 만으로는 그다지 좋은 평을 내리기가 힘을었었는데, 다 커버린 정신으로 이것을 읽고나니. 황폐했던 마음에 억지로 끌어오던 물줄기마저 매말라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달까. 

이작품은.. 뭐랄까. 60-70년대 이야기인데, 공부밖에 모르던 순수하던 시골청년 형빈과 어린나이에 알것 다 알아버린 애절한 사연을 담은 윤주의 이야기이다. 


첫번째로 머리가 띵해진 장면은 형빈이 윤주의 몸을 가지려 했을 때 이다. 윤주는 자신의 몸을 허락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니며, 자신은 이미 그것을 누군가에게 허락한적이 있다고 말한다. 형빈은 그 말을 듣고 격분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싸움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허락한 이유나 상황은 들어볼 생각도 안하고 말이다.

여기에서 첫번째의 충돌이 시작된다. 형빈은 전형적인 한국남자이다. 정조, 정절, 순수 따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윤주는 도덕이나 윤리를 버리고 삶을 고나리하려하나 결국 형빈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실패하고 만다.

윤주는 잠적해버리고, 형빈은 꽤나 오랜시간 뒤 그녀를 찾아나서 외국인 전용 술집에서 형빈과 재회하게 된다. 뭐 여차저차하여 윤주는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나고, 그와 이혼한뒤 재혼한다. 형빈은 그당시로는 드물게 (출세하여) 미국으로 발령나게되고, 그곳에서 윤주를 만나게된다. 윤주의 두번째 남편이 죽으며 남긴 재산으로 그들은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서 또 한번의 충돌이 시작된다. 윤주는 한국인 직장동료를 데려온 형빈과 크게 싸운다. 그녀는 한국남자들의 정서를 절대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어찌보면 사대적일 수 있는 이러한 가치. 이것은 지난 수백년간 조선땅을 지배해왔다. 남자들이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여자들에게 책임만 전가하고, 여자들은 그러한 남자들을 조소한다.

그후.. 돈이 떨어져가자 형빈은 자동차 2대중 한대를 (무려 70년대에 자동차 2대를 굴렸단 말이다) 팔고 집을 조금 작은 곳으로 옮길 것을 권유하나 윤주는 황인종들이 섞여있는 곳을 슬럼가라 비유하며 마지막 남은 재산들을 태워간다.

그리고 형빈은 회사일에서 불법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하며 결국 들키게되고, 그 둘은 작은 일을 시작해보나 (법공부를 한 형빈이) 사기를 당하며 가게도 망해버린다. 그리고 결국 노동력을 팔던 그들. 윤주는 또 다른 백인남자와 도망가버리고, 형빈은 이전에 약속하였던 노후를 보내기로 한 장소에서 그녀와 재회하며, 자신들의 삶을 마감하려한다.

그리고 형빈은. 수중의 돈이 다 떨어졌음을 알고 권총을 꺼내들고 윤주를 쏜다.



뭐랄까. 나도 참 많이 바뀌었다. 이런저런 사람들 만나며 더이상 그저 순수하게 믿어주고, 좋아해줄 수 없는 나를 보며 예전사람들을 더듬어가는 나를 보며. 어릴때 친구가 평생 친구라던 어른들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외적요인으로 강제로 찢어지고, 내 속내를 다 드러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떠나버리고.

살다보면. 다시 그런날이 오기야는 하겠지. 누군가는 오겠지.

미련이라는거. 분명 타오르기 충분하다면 후회없이 시작하는 것도 좋겠지마는... 그것때문에 추억까지 버리긴 싫다. 그래. 그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 아니더라도, 신중할 필요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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