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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 기빙서클 주관 문화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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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 기빙서클 주관 문화강좌

F.M business

- 2010년 대한민국 음반심의의 한계와 대안

매니아 기빙서클 소개 : 서태지 이벤트 사업회주최의 888파티 잔여 수익금 활용방도 고민중 목적성의 띈 기부를 목표로 매니아 기빙서클 창립.

사업설명회 진행 후 저소득층 청소년 지원 등의 활동을 개시. 매니아의 기부와 기부에 의한 기부자들의 성숙을 기대.

음반 심의의 한계와 대안

일단 임진모씨는 미국의 예를 먼저 들었다. 1984년, 미국의 민간 음악 검열단체 PMRC(Parental Music Resource Center)에서 저질과 퇴폐로 찌들어있는 미국 음악계에 음반회사에 압력을 넣으며 욕설 등에 대한 자체심의를 요구하였다.

‘음반은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쩔 수는 없지만, 그러다보니 욕설이나 과격한 표현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알아서 좀 해주십시오.’

=> 음반사에서 자체적으로 심의 후, 부모의 지도를 요하는 ‘이 음반은 과격하거나 선정적인 표현등이 들어있으니 부모의 주의를 요구 합니다’라는 요지의 텍을 부착.

(참고)

프린스, in (1984)

프린스 본인이 주연한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이자,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반년 가까이 정상을 차지하고 1980년대 명반을 뽑을 때 1, 2위를 다투는 작품. 그렇지만 프린스와 한국의 인연은 악연에 가까운데 이 작품도 온전한 형태로 듣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유인즉 와 가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기 때문. 특히 는 흥미로운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다름 아니라 미국의 민간음악검열단체 PMRC가 탄생하는 직접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 사건의 발단은 앨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가 딸과 함께 이 노래를 듣다가 화들짝 놀라서 알음알음 모은 사람과 함께 1985년 5월 PMRC를 설립한 것. 가사는 “I knew a girl named Nikki/ I guess you could say she was a sex fiend/ I met her in a hotel lobby/ Masturbating with a magazine.”

1970년대 트로트와 미8군 계열의 음악이 지배하던 시대에 젊은이들의 음악인 포크와 로큰롤이 치고 올라오며 군사정부시절에 뜨거운 저항정신의 포크와 로큰롤이 보수적인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좋게 보기가 어렵고, 눈에 거슬렸다. 그리하여 군사정부는 대마초라는 건수를 잡고 그들을 탄압하게 된다. (신중현 : 출세, 경쟁을 반대하는 히피문화를 즐기는 외국 젊은이들이 자신의 공연을 보러와 격렬한 반응과 그네들 집에서 밥멕이고 보내려니 이놈들이 대마초를 주더라. 그걸 집에 쌓아놓으려니 후배들이 와서 가져가고 자신은 대마초 수괴가 되었다더라. 그것은 정권에서 애들을 옥죌 계기라 판단 후 슈퍼스타들을 모두 검거)

그 후 가요 검열대책 마련. (계엄 하 긴급조치 9호) 퇴폐적인 문화는 국민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금지곡 처분을 내린다. 나오는 곡들과 기존의 곡들을 1~3차 심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예술윤리 위원회-> 공연 윤리 위원회) 가요 220곡과 팝송 250곡을 걸러내게 되며 (그중에 표절이나, 이미자 노래를 외색 판정하는 등은) 지구레코드와 오아시스레코드의 자본싸움이 되었다.

결국 그것은 젊은이들의 음악인 포크와 로큰롤을 그리고 그것이 대표하는 젊은이들의 저항정신과 새로운 생각들을 막기 위하여, 세뇌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 당시 분위기로는 노래가 금지 되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던 군사독재 시대였으며, 그 심의방법은 노래의 가사를 심의하는 ‘사전 심의 제도’ 였으며 그것은 음악가들이 자기검열 으로 길들여지게 하였다. (누구는 그래서 비꼬는 가사들을 배우다 보니 시인이 되었다며)

아티스트의 노래와 자신의 소통으로 이루어지는데 자신을 소통, 표현할 수 없게 된다. 고로 그 결과물도 사실주의 음악은 언더그라운드로 사라졌고, 그것이 1995년에 (1992년 김영삼 정부-이를 서태지가 대신해주고 노태우 당시 민주화정책으로 이미자나 밥 딜런 등의 금지곡들이 풀리고) 88년에 나온 ‘제주도의 푸른 밤’이라는 곡을 그 당시에는 통과되고, 90년대에 인공위성이 리메이크할 때에는 안 된다고 하여 따졌더니 마음대로 하세요~ 하더라.

정태춘의 노래 (아 대한민국 음반) 가 금지 처분을 가지며 정태춘은 격렬하게 반발하게 되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공윤과 사전심의가 폐지된다. (1995년)

그 후 사후 심의로 바뀌게 되는데, 그러므로 정부는 청소년 보호법 관련으로만 심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욕설이건 뭐건 다 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게 알아서 하는 건데 미국에서는 자체적인 심의로 부모의 지도를 요한다는 텍을 달지만, 한국에서 그것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음반사는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딱지를 붙임과 동시에 판매량이 (영화 심의에서 15, 19세 차이) 급격하게 변하게 되니 그것의 논쟁은 격렬하게 되며, 공연윤리위원회의 역할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넘어가게 되고, 국가청소년위원회로 넘어간 후 국가청소년위원회13명가 사라진 후 보건복지부(아동 매체 환경과 9명), 현재는 여성 가족부에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종사자 반,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 반. 계속되는 충돌.

그 와중 동방신기의 미로틱 사건이 터짐. 여성이나 청소년이 관련된 순간 그들에게는 특히나 성적인 묘사에 대하여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알거 다 아는 애들인데 규제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듣는이들이 모두 그러하게 해석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임진모씨는 사퇴서를 내고 말지만 지금까지 심의하는 사람도, 심의되는 기준도 바뀌지 않는다. 정부가 리서치하고 초이스 하는 사람이니만큼 어쩔 수 없으며, 그것이 지속적인 활동이 이어질 경우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현 여성복지부 관련 위원장도 음악계 종사자가 아님)

그래서 결국 필요한 것은 심의 자체가 사라져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조금 더 자유로운 공간과 주류공간이 확실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한국의 시장이 아무리 떨어진다고 하여도 그것은 충분히 세계적으로 음악시장이 위력적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심의 자체가 업어져야 하는데 그 필요 조건 중 첫번째가 공간의 분리이며, 음악계가 자체적인 심의이다.

99~02년 영상물등급위원회->국가청소년위원회의 공백기에서 지나치게 많은 심의대상이 나오면서 보수층이 많이 들어감.

영상물 등급 위원회

국가 청소년 위원회

보건복지부 아동 매체환경과

여성가족

심의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반대급수로 작용하며 진정 필요한 심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에는 각계층이 모두 음악시장에 유입되며 폭발합니다. 92, 96 등장과 은퇴를 겪으며 90년대 가장 큰 파급을 미친 서태지와아이들, 그리고 그 후 (영턱스클럽 이후) H.O.T등

88년 무한궤도

89년 이승환

90년 신승훈

92년 서태지

김건모 (레게등 흑인음악을 한국사회에 편입시키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흑인음악에 열광하는것은 기성세대가 압도적으로 백인음악에 열광하였기 때문이다.

듀스 (난알아요, 하여가 등으로 터져나온 것을 힙합으로 승화시키다)

R&B - 조환-늪/솔리드

특히나 서태지의 등장후 그들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며, X세대를 출현시킨다.

1댄스 2힙합 3 알엔비 4 포크-김광석/민족음악-강산에 안치환 윤도현 등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서 그런지와 얼터너티브등의 락음악을

5싱어송라이터(유희열 토이 패닉등)

96년 은퇴 후 => 에쵸티, 젝스키스, SES, 핑클 => GOD(어머니께 박진영)

그 전 또한 대형 기획사들이 판치고 있었는데, 그 후와 그 전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 전의 기획사는 어떠한 음악가가 들고온 음악을 ‘인정’하며 ‘신뢰’해주었던 것이며, 그것을 서포트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의 기획사는 기획사에서 그것을 직접 지도하고 이끌어 나가기에 그들의 음악은 예술이 아니다.

그들은 스타를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기획사의 이상과 매출, 그리고 그들의 성공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음악은 집단적인 작곡가들이 ‘공급’하는 것이며, 그것을 자신들의 기획 포인트에 따라 소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예술과 음악 산업에서 음악 산업이 음악예술을 더 높혀 주고, 보조해 줄 때야말로 음악 산업이 더욱 빛을 볼 것이다.

또한 서태지의 F.M Business는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는 내용이며, 그러기에 그것은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들은 커뮤니티. 모임들이 모여 우리들의 그 가치가 실현될 것이며, 그렇기에 그것의 작용과 반작용의 서클 속에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실현치 못 하더라도 우리 다음 대에서 계속될 것이다.

-심의제도

-서태지를 분기점으로 한 한국음악계

(질의)

심의에 대한 여성의 보수적인 입장이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심의할 내용물의 증가에 따라 그것을 모두 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우리나라에서 곡이 많이 않음. 외국곡은 누락된게 많긴함. 외국곡의경우는 힙합이나 락음악.. 그리고 특히나 그중에서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사람들 위주로 심의를 한다. 그리고 그중 심각하게 누락되는경우는 별로 없다.

더티버전, 클린버전이 있는 경우는 어떤지?

더티버젼, 클린버젼이 있더라도 그것이 소비되는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 그것이 공존하는것이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그것의 진정성일 것이다. 그들이 그것의 상업성을 위하여라면 지양해야겠지만, 그 감정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한것이며, 그것이 주류에서, 혹은 인디에서 나올 것이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방송국 또한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음악시장의 크기가 크다고 하여도 그것의 수익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이 크기가 크다고 할 수 있는가?

영, 미는 어마어마한 라이브시장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다운로딩시장이 작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결국 수익분배의 문제인데, (평론가는 음악가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음악가는 평론가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평론가는 음악가에게 종속되는 역할이며 2차생산자이기 때문에, 펴온가는 음악가에 대한 봉사이다.) 미국의 경우 콘텐츠 생산자가 70%를 가진다, 그것은 저작권자와 저작인접권자, 그리고 실연권자를 포함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동통신사와 콘텐츠 프로바이어등이 (CP) 75%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46%) 그것은 결국 국가와 대기업들의 논리에 따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음악계로 회귀하는 돈이 줄어든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결국 음악을 재창출할 자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다운로딩시장이 계속 커진다면 그것은 괜찮은 일일 것이지만, 그것이 팔리지 않음으로 덤핑판매로인하여 수익이 계속 줄어들게 된다. 또한, 음악을 듣는 계층이 점점 더 젊은층에 제한되면서 젊은 음악가들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음원 수익분배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음원판매가 활발해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 대안으로 가는길에 있어서 그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청소년에 대한 기득권을 다시 놓지 않을 것 같고, 심의 자체를 없애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것은 심의과정이 일원화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는데, 한 단계 낮은 수준의 대안이 있는지, 음악관련 종사자들이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음악계의 시선은 무관심이다. 존폐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그러한 고민은 너무도 힘들다. 왠만한 기획자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도 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입시제도부터가 문제점이 있다. 한국의 학술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좋지만, 그들이 하고싶은 것을 하고, 정부도 더욱 디테일하게 나누어져 전문성을 가져야한다.

조금 더 컨텐츠가 늘어나고, 소비층이 다양해져야(diversity)한다.

그거시 문화예술의 자체적인 심의를 가져야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재심의를 열게 한다던가 하는 것이 어렵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노력들이 있는가?

지금 현재 세상은 피드백이 막혀있다. 지금 당장 여기 있는 200명이 홈페이지에 올리고 엽서보내고 전화하고 찾아가고. 그리고 그것을 불려야한다. 과거에 비하여 서태지 팬덤이 너무도 작아진게 아닌가 싶다. 2천명이 전화하고 엽서 보내고 찾아간다면 그들이 과연 무시할 수 있겠는가? 방법론에 눈을 뜨자. 너무 설치면 욕먹는다. 그걸 잘 조절해야 할 것이다.

(방문이 중요하다 그런데 방문은 다수가 아니라면 어렵다.) 작기 때문에 나(임진모)도 모르고, 기사도 안나는 것이다.

04년도 앨범이 그 당시에는 심의에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재심의에 들어갔는데, 그게 한번 19세 먹으면 영원히 19세인지?

심의의 주체가 계속 바뀌었듯이, 그것이 지속적인 노력은 성과가 나타날 것이며, 또 그 심의 주체나 정권이 바뀌면 또 달라질 것이다.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재심의로 인하여 다시 바뀐 적이 있는지?

내(임진모)가 나올 때 까지는 없다.

재심의를 안 해서 그런 것인지 혹은 재심의요청을 했는데 묵살당한 것인지?

곡의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단어 자체로서 심의한 심의위원의 자격은?

음반 심의 자체를 쉽게 보는 것이 아닌지.

서태지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어휘가 아니며 이것은 그 곡의 의미를 가장 잘 부각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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