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남한산성

ThePalace/Book 2012.07.12 13:19

 

 

전쟁의 원인은 무엇이던가? 강홍립이 광해군의 밀명을 받아 이리저리 중립외교를 편 이후. 광해군은.. 그렇게 외교를 판단했단 말이지. 하지만, 작중 임금이나 대신들은 외교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던가? 그들은 강한편에 붙어서 존속하지도, 약한편에 붙어 강한쪽을 견제하지도 못하였다.

오로지 유교사상에. 사대정신에 절어 명분만을 주장하였기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이 잘 못 된 것인가? 아니다. 유교사상은 수백년 조선역사를 지탱한 가치관이며 철학이기에 그것이 그 사상에 부합하다면 그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러하였을때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 하였다면, 그리고 그것을 예층하였건 못하였건 간에 그것을 대비하지 못 하였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광해군은 그래도 외부 사정에 신경을 쓰며 국방을 대비하였기 때문에 그는 내부 정치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외적으로는 비록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노력했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쟁을 대비하지 못 한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일단 그 조선을 지탱하던 가치관인 유교. 그중 사대주의를 들 수 있겠다. 사대주의란 본디 가한 편에 붙어 존립하려던 세력을 의미하며, 그것은 우리에게 '조선의 유교'가 아닌, '유교의 조선'이 있게 만들었다 하겠다. 그로 인하여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하였고 그렇기에 원활한 외교정책을 펴는 데에 있어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많이들 지적하였듯이 과거의 폐해를 들 수 있다. 과거는 본디 많은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한 바람직한 목적이었으나, 과거급제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행보. 예컨데 당파싸움이나 한글유포억제, 무반 천시등을 들 수 있다. 이는 과거로 인한 전쟁결정을 예의범절 따지기 좋아하는 기득권층이 하지만, 그것에 의하여 희생되는 것은 젊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31대 대통령 하버트 후버의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지만 죽는 것은 젊은이이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조선은 그간 전쟁에 대하여 예의범절만 논할 줄 알았지, 그 전쟁을 실행할 무반들과 그것에 필요한 기술직에 대해서는 항시 천시해왔다. 예컨데 작중에 제대로된 무반이 군 통수권을 잡았는가? 아니다. 영의정이라는 양반은 자신의 뜻과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하급자들 앞에서 군권자를 처벌하였고, 독단적으로 작전에 필요한 사안을 결정하였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도연 아무런 적개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하여 말로 조정을 가득 채웠지만, 칼 앞에서는 그저 생쥐꼴이 되어 입다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그 칼을 막을 자신의 칼을 환멸했던 것이다.

그 작전의 기반이 된 것은 무엇인가? 병법이란 본디 철학이다. 동양에서 대표적으로 추앙받는 두 병법서인 도가사상을 반영한 손무의 손자병법과 법가사상을 반영한 오기의 오자병법이 전자는 규율과 체제, 후자는 인간의 심리를 중시여기는등의 사상적 차이를 보이며 전쟁의 기술이 아닌, 사고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기에 작전계획 수립 기반은, 그리고 그 이전에 전쟁의 방향 또한 유교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작중의 대장장이는 바늘이나 실등의 실제 필요한 정보들을 모르는 자의 명을 받으며 화약을 직접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터진 후에야 총포를 직접 보고 제작하기 시작하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만약 조선이 반역을 할까봐 믿을 수 없어서 문관을 지휘관으로 임명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 대신 무반과 기술직들을 우대하고 믿어주었다면 어떠하였을까? 조선의 군제는 너무나도 열악하였으며, 그것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문반의 효율적인 군림이었지, 효율적인 작전수행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상의 차이는 신분계층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후금의 칸이 사냥개를 기르고 말을 달려 전쟁터에 나타나는 것에 반하여 조선의 국왕으로부터 대신까지 고위직들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 보다 자신의 안위와 기득권유지에 더 힘쓰지 아니하였던가? 그러한 조선이라는 나라는 백성들에게 충성을 요구한다. 작중 "세습 노비에게 나라는 본래 없었고, 태어난 자리와 고을을 버려야만 살 길이 열리리라"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는 국가가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기득권층을 위하여 계급을 형성했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정책은 결국 하위층의 불만을 이끌어내며, 그것의 착취-피착취의 관계가 극에 달할 때에 그것은 결국 폭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200년 종사가 신민을 가르쳐 길렀으니 반드시 청의의 무리들이 달려올 것입니다." 기득권층이 조선백성들에게 해준 것이 무어가 있던가? 조선의 백성들은 서양은 농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부분이 소작농 계층이었으며, 그것의 세율이나 정경유착으로 인한 폐해가 엄청났다. 또한 경제가 부강하지 못 하며 기술이 천시되며 낙후된 나라였기 때문에 소작쟁의 또한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충의를 가진 인물들이 있었기에 조선이 어찌어찌 견뎌왓을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조선은 환골탈태할 기회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이전에 백성들에게 그러한 가르침을 주기 위한 한글 반포를 막은 것이 그 사대부들인데 무엇을 가르쳤다는 말이던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기득권층을 위하여 괜히 여러운 책들을 읽으며 한문 따진 것이 사대부들인데?

조선국왕은 남한산성에 들어가지만 그곳에는 의식주와 병기 그리고 자급자족능력과 소통방법, 그리고 전투대비 또한 부족하였다. 남한산성은 이미 신 병기들을 가지고 있다면 불과 수십명으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의미없는 성곽이었으며 조선의 관리들은 그러한 정보를 모르거나, 대비하지 못하였다. 또한 전시 행궁으로서 최후로 고려될 남한산성임에도 불구하고 비축식량과 화약, 말먹이와 무기들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것이 전쟁을 일으킬 줄만 알고 대비할 줄은 모르는 사대부들이다. 또한, 러시아 기갑전의 모티브이기도 하며 현재 북한의 기본교리이기도 한 후금의 교전수칙은 광해군당시 광홍립이 보았듯 다수의 경기병과 대체 가능한 예비 군마를 이용한 속도전이다. 이러한 점을 간과한 조선은 당연히 강화도 피난을 제 시점에 할 수 없었다.

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조선국왕이 식량도, 지원군도 남질 않은 상태에서 선택할 길은 무엇이던가? 자진하거나 옥쇄하여 전 백성에 대하여 한마디, 그리고 역사투쟁을 하는 것이던가? 아니면 당장의 수모를 감수하고 와신상담의 길을 걷는 것이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지금까지의 사대정책의 대상을 바꾸는 것이던가? 인조가 택한 것은 토지제도와 군제를 정비하는 것이었는데, 토지제도란 그당시 경제체제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으나 결국 빛을 보지 못 하였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라는 단어는 위험하다. 하지만 만약 인조가 역사투쟁을 택하였다면 지금쯤 호란이 어떻게 기억될지 잘 모르겠다만, 지조와 절개를 지키자하면 그러하는게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이따금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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